[일렉트릭파워 고인석 회장] 신고리 5·6호기 종합공정률이 최근 50%를 넘어섰다. 먼저 공사에 들어간 5호기의 경우 외벽 콘크리트 타설을 마치고 원자로 지붕격인 돔을 쌓아 올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제법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는 이곳에는 현재 전력을 생산하고 있는 신고리 3·4호기와 건설 중인 신한울 1·2호기에 이어 한국형 신형 원전인 APR1400 모델이 들어갔다. 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 기술력과 안전성을 인정받아 해외 첫 원전 수출에 성공한 UAE에도 동일한 모델이 적용됐다.
우리나라가 독자적인 기술로 개발한 신형경수로 APR1400은 최근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설계인증을 받으며 다시 한 번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설계인증 취득은 APR1400을 미국 내에 건설하고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 세계적으로 까다롭다는 NRC 인증을 획득하면서 미국 원전 수출길이 열린 셈이다.
앞으로 APR1400 원전을 미국에 건설할 때는 건설부지 특성에 따른 안전성만 심사 받으면 된다. 미국 이외 노형이 설계인증을 받은 것은 APR1400이 처음이라고 하니 우리나라 원전 기술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짐작할 수 있다.
APR1400은 세계 최초로 상업운전에 성공한 3세대 원전이다. 하지만 막상 국내에선 더 이상 공급기회를 없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이번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에너지전환 정책에 따라 신고리 5·6호기 이후 계획된 원전 6기 건설이 모두 백지화됐기 때문이다. 신고리 5·6호기가 마지막 원전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나마 한수원이 신한울 3·4호기에 대해선 보류 입장을 보이고 있어 최종 결정은 미뤄진 상태다.
원자력계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허탈해 하는 분위기다. 신규 원전 건설의 경우 해외시장 수주보다 자국 발주 비중이 훨씬 높다는 점에서 심각성은 더욱 크다. 우선 당장 눈에 띄게 일감이 줄어 원자력산업 생태계 자체가 붕괴될 위기에 놓였다.
원전 주기기를 제작해온 두산중공업의 경우 올해 공장 가동률이 50% 수준으로 급감했다고 한다. 심지어 내년에는 10% 미만으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두산중공업의 원전사업이 움츠려 들면서 협력사의 일감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랜 기간 쌓아온 기술력과 전문인력을 한순간 잃어버리는 최악의 사태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이런 의미에서 신한울 3·4호기의 건설 재개는 단순히 원전 2기를 짓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국내 원전산업의 연속성이 보장돼야 해외시장에서 신뢰성을 바탕으로 기술경쟁을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는 넓고 긴 안목으로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전환 정책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전 세계적 흐름이다. 하지만 전력정책은 백년대계란 말처럼 일관성과 함께 안정성 유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원전설비 규모는 2024년까지 일정부분 증가하다 정점을 찍고 2040년 이후 절반 수준으로 급감하게 된다. 전기요금 상승과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현실적인 전력정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