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파워 고인석 회장] 2011년 한국과 미국은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에 대한 연구를 공동으로 추진했다. 이와 관련된 연구보고서가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라 그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가동 후 완전히 연소되지 않은 연료를 의미하는 것으로 다량의 핵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처리 문제를 놓고 항상 논란돼 왔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사용후핵연료 저장공간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더욱 큰 상황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사용후핵연료에서 재순환이 가능한 핵연료와 폐기물을 분리하는 기술이다. 사용후핵연료를 500도 이상 고온에서 용융염 상태로 만든 다음 전기분해를 이용해 우라늄·초우라늄 등의 핵물질을 분리하는 과정을 거쳐 핵연료로 다시 이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분리수거한 폐자원을 재활용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분리된 고준위 폐기물인 초우라늄을 소각하기 위해선 중성자가 필요한데 현재 기술개발 수준에 비춰볼 때 가장 대표적인 장치로 꼽히는 것이 소듐냉각고속로(SFR)다. 파이로프로세싱을 이야기할 때 소듐냉각고속로가 함께 회자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SFR 건설계획을 발표해 일반인의 관심도 높아진 상태다.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을 활용하면 이론상 사용후핵연료 부피를 1/20, 발열량은 1/100로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또 방사능 반감기를 30만년에서 300년으로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건식재처리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핵무기 개발에 쓰이는 플루토늄 추출 우려가 없다. 습식방식의 경우 플루토늄 분리가 가능해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는 금지돼 있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파이로프로세싱을 통해 사용후핵연료 부피를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사용후핵연료를 포함한 방사성폐기물에 대한 영구처리나 저장방법을 찾지 못한 상태라 파이로프로세싱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다.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에 따르면 국내 운영 중인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은 순차적으로 포화시점에 다다르게 된다. 한빛원전 2029년을 시작으로 한울원전 2030년, 고리원전 2031년, 신월성원전 2042년, 새울원전 2065년이면 사용후핵연료 저장공간이 포화상태에 이른다.
임시처리장인 맥스터에 저장된 사용후핵연료도 40년 후면 중간저장을 거쳐 영구처리시설로 옮겨야 한다. 고준위폐기물 영구처리장 부지 선정에만 12년이 소요되고, 30년의 건설기간을 거쳐야 제모습을 드러낼 수 있으니 아직 까마득하다.
파이로프로세싱에 대한 한·미 공동연구 결과가 발표된다고 해서 국내에서 관련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결국 각국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 가운데 하나가 비록 원전 비중 축소이긴 하지만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는 전혀 다른 사안이란 점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 미래세대가 떠안아야 할 위험을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최소화 하는 것은 책임이자 도리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