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파워 고인석 회장] 새 정부가 110대 국정과제를 선정하고 본격적인 국정운영에 들어갔다. 지향점으로 내세운 상식과 공정을 국민 눈높이에 맞춰 국정과제 수행에 잘 녹여내길 기대해 본다.
새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에는 향후 에너지정책 방향성을 담은 내용들이 포함됐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이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자력산업 생태계 강화를 중점 과제로 제시한 부분이다.
새 정부는 110대 국정과제 가운데 3번째로 언급할 만큼 원전산업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강한 의지는 내비쳤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비롯해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 한·미 원전동맹 강화, 독자 SMR 개발, 고준위방폐물처분 관련 전담조직 신설, 원자력안전위원회 독립성 확보 등 원전 최강국 도약을 위한 전방위 지원에 나설 방침이다.
새 정부는 원전을 산업적 측면과 함께 기후변화 대응수단으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이전 정부에서 수립한 2030 NDC를 따르되 에너지·산업·수송 등 부문별 현실적인 감축수단을 마련해 법정 국가계획에 반영하기로 했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키는 작업도 이 같은 과정의 일환이다. 환경부의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시킨 후 내년부터 현장에 적용해 녹색 투자분야 자금유치와 지원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결국 원전 확대 기조를 뒷받침하기 위해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제4차 에너지기본계획을 통한 에너지믹스 조정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원전 활용 확대로 2030 NDC 달성에 기여한다는 계획에 따라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축소는 불가피해 보인다.
새 정부 국정과제에는 현행 전력시장과 전기요금체계를 시장원칙이 작동하는 구조로 바꾸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시장원칙 기반의 투명하고 합리적인 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국정목표 가운데 하나로 내세운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의 실천과제인 셈이다.
시장원칙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진 않았지만 앞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에너지정책 중점과제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당시 인수위는 한전이 독점하고 있는 전력판매 구조를 점진적으로 개방하겠다는 의지를 표시했다. 기존 발전사업자도 전기수요자에게 전력을 판매할 수 있도록 PPA(전력구매계약) 허용범위를 확대하는 게 주요골자다.
2000년 전력산업구조개편이 본격화된 후 논의가 멈췄던 2004년 이래 에너지 전문가들 사이에도 여전히 논쟁을 이어가고 있는 전력시장 개방 이슈를 다시 수면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통상적으로 독점과 개방이란 단어가 주는 어감과 사전적 의미가 극명하게 엇갈리다 보니 개방을 표방하는 목소리에 긍정적인 시선을 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국민 실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만큼 공공재 성격을 띤 전기를 시장원칙이란 미명 아래 민간에 개방하는 것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상식적인지는 충분한 논의를 거칠 필요가 있어 보인다.
PPA 확대로 기존 발전사업자도 전력판매에 참여할 수 있는 문턱을 낮추겠다는 것은 현재 대기업 중심의 민간발전사들에게 새로운 수익모델을 제공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경쟁체제를 도입하면 전기요금이 낮아질 것이란 희망 섞인 기대도 있지만 앞서 전력시장을 개방한 세계 주요 국가들의 전기요금과 서비스 변화를 면밀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새 정부가 내건 상식과 공정이 앞으로 풀어갈 에너지정책에도 잘 스며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