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확대 정부 주도로 전환
재생에너지 확대 정부 주도로 전환
  • 박윤석 기자
  • 승인 2024.05.17 2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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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입찰 중심 보급 유도··· RPS제도 폐지 수순
RE100 재생에너지 수요 PPA 활성화로 지원
5월 16일 발표된 산업통상자원부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및 공급망 강화 전략’에 담긴 RPS제도 개편안
5월 16일 발표된 산업통상자원부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및 공급망 강화 전략’에 담긴 RPS제도 개편안

[일렉트릭파워 박윤석 기자] 정부가 재생에너지 활성화와 관련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제도·정책 마련에 머물지 않고 시장 확대 과정에 주도적 역할을 맡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집적화단지, 고정가격계약 경쟁입찰 추진 시 공공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정부입찰 중심으로 공급물량을 정하는 시장제도 개편을 추진할 방침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5월 16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재생에너지 업계와 간담회를 갖고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및 공급망 강화 전략’을 발표했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 주재로 열린 이날 간담회에는 풍력·태양광 분야 개발·제조업체와 재생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RE100 참여 기업들이 참석해 의견을 나눴다.

산업부는 질서 있고 체계적인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정부 주도 연평균 6GW 내외 보급 ▲공급망 구축 통한 산업 경쟁력 강화 ▲시장제도 정비 통한 확산 기반 구축을 기본방향으로 정했다.

또 구체적인 추진 방향으로 ▲건강한 해상풍력산업 생태계 조성 ▲질서 있는 태양광 확산 ▲시장제도 전환 ▲해외시장 진출 지원 등을 전개해 나가기로 했다.

특히 산업부는 국내 공급망 구축 시기를 놓칠 경우 기술력 격차가 더욱 커질 뿐만 아니라 저가 외국산 제품 점유율 또한 높아질 것으로 판단하고 해상풍력 전용설치선·배후항만, 차세대 태양전지 등 인프라 구축과 기술개발 지원에도 나설 계획이다.

이미 태양광 분야는 저가 중국산에 시장을 내준 가운데 풍력도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기업에 내수 시장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 주도에 방점을 둔 이번 재생에너지 확대 전략을 놓고 재생에너지 업계에선 기대와 더불어 우려도 내비치고 있다.

풍력업계 한 관계자는 “해상풍력 시장을 만드는데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나서게 되면 정책 신뢰성이 높아져 개발사들의 적극적인 투자를 이끌어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도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한 국내 해상풍력 개발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민감한 전기요금을 앞세워 급진적인 발전단가 하락을 유도할 경우 관련 산업 생태계 조성은 고사하고 시장 자체가 얼어붙을 수 있다”고 밝혔다.

국민부담 언급··· 보조금 축소 이어지나
현 정부 들어 풍력·태양광에 방점을 둔 구체적인 재생에너지 활성화 전략이 처음 발표된 터라 업계 관심 또한 높았다.

특히 업계가 주목한 대목은 10년 넘게 유지해온 RPS제도의 폐지다. 비록 태양광 쏠림 지적을 받아왔지만 국내 재생에너지설비 확대를 뒷받침하던 유일한 제도적 장치가 없어지는 것에 긴장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시장 변화에 따른 새로운 신재생에너지 제도 전환 필요성을 강조하며 국민부담 가중을 언급한 부분이 보조금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FIT(발전차액지원제도)에 이어 RPS제도 마저 비용 부담으로 폐지되는 모양새라 향후 전환될 정부 주도 입찰제도가 보조금 지원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될 수 있다는 것이다.

FIT와 RPS에 쓰인 지원금 재원이 기본적으로 전기요금을 통해 충당됐다는 점에서 이 같은 우려의 무게감이 가볍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FIT 운영 시 발전사업자에게 지급됐던 지원금은 전기요금에 포함된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재원으로 했다. RPS의 경우 한전이 공급의무사 이행비용을 상당부분 정산하고 있다. 한전은 전기요금에 기후환경요금을 부과해 RPS 이행비용을 지급하고 있지만 점차 보조금 규모가 커지면서 적자 폭도 늘어나는 추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5월 16일 풍력·태양광 분야 개발·제조업체와 재생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RE100 참여 기업들과 간담회를 가졌다.(사진=산업부)
산업통상자원부는 5월 16일 풍력·태양광 분야 개발·제조업체와 재생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RE100 참여 기업들과 간담회를 가졌다.(사진=산업부)

올해 하반기 RPS제도 개편 본격 논의
산업부는 현행 RPS제도가 복잡한 체계로 운영되다보니 가격 경쟁에 한계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공급의무사에 대한 비용 절감 유인도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이와 함께 RE100 참여 기업이 늘어나면서 민간부문의 재생에너지 수요도 증가해 시장 변화에 맞는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산업부는 정부 역할을 확대해 정부입찰 중심으로 신규 재생에너지설비 보급을 유도할 방침이다. 정부가 매년 풍력·태양광 신규 보급물량을 정한 후 직접 입찰을 통해 선정하면 한전이 발전사업자와 20년 장기 고정가격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다.

이때 입찰 평가기준은 가격과 비가격으로 나뉜다. 소규모 설비에 대해선 별도 시장진입 경로를 만들어 보호할 계획이다.

산업부는 이 같은 RPS제도 개편으로 정부 시장 영향력을 키움으로써 안정적인 보급목표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가격 경쟁을 통한 개발비용 하락 유도로 국민의 전기요금 부담도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발전사업자의 경우 SMP·REC 가격에 상관없이 20년간 고정가격으로 계약하기 때문에 착공단계 금융조달과 수익 안정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산업부는 RPS제도 개편과 관련해 올해 하반기 국회·업계·전문가 등과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갈 계획이다.

풍력업계 한 관계자는 “RPS제도의 기본 틀은 발전사업자에게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량을 할당하고 가격은 시장 결정에 맡기는 것”이라며 “시장 경쟁을 통해 가격 하락을 유도하려한 제도 도입 취지를 살리지 못해 결국 폐지 수순을 밟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제시한 RPS제도 개편 내용은 과거 운영했던 FIT와 일부 유사하다”며 “정부입찰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영국이 해상풍력 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도입한 CfD(발전차액정산제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데 이럴 경우 현행 REC 가중치도 없어질 공산이 크다”고 덧붙였다.

영국은 한국의 RPS제도와 유사한 RO제도를 2002년부터 운영하다 2014년 CfD로 본격 전환했다. 정부입찰을 통해 해상풍력 보조금 역할을 하는 지원금액을 결정하는 CfD는 15년 장기계약으로 투자 불확실성을 낮추는 기능을 하고 있다.

CfD는 전력시장가격인 SMP 변동과 상관없이 정해진 정부 기준가격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전력거래가격이 정부 기준가격보다 낮아지면 정부가 차액을 보전하고, 반대 상황이 발생할 경우 사업자 수익을 환수하는 방식이다.

PPA 중개시장 개설··· 공공·민간 협업
산업부는 의무시장인 RPS제도 개편과 함께 민간부문의 자발적인 재생에너지 수요 증가를 뒷받침하기 위해 PPA 활성화도 지원하기로 했다.

우선 RE100 참여기업의 재생에너지 구매방식 가운데 하나인 녹색프리미엄의 경우 풍력·태양광 등 에너지원별 구매가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 또 올해 하반기부터 1년 단위 계약을 3년으로 늘리는 다년 입찰도 도입한다.

이와 함께 ▲PPA 용량기준(1MW) 완화 ▲요금정산 다양화 ▲사전신고 기한(2개월) 완화 ▲PPA 초과발전량 REC 재판매 허용 등 규제도 완화하기로 했다.

특히 정부입찰 시장과 민간부문이 재생에너지를 놓고 경쟁하지 않도록 공급을 늘릴 계획이다. 예를 들어 연간 풍력 보급목표가 4GW일 경우 PPA 입찰로 1GW 계약 시 정부입찰은 3GW를 추진한다.

산업부는 올해 하반기 이후 공공·민간 협업으로 초기 PPA 중개시장을 개설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민간 수요 물량을 의뢰받아 통합 입찰한 후 거래하는 방식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민간이 주도하는 자발적 재생에너지 거래시장도 조성할 예정이다. 민간 운영기관에서 물량조사·입찰방식·입찰대상 등을 직접 수행하고, 전력거래소·에너지공단·한전이 지원하는 형태다.

산업부가 PPA 활성화 일환으로 계획 중인 민간주도 자발적 재생에너지 거래시장 구조
산업부가 PPA 활성화 일환으로 계획 중인 민간주도 자발적 재생에너지 거래시장 구조

풍력 입찰 평가 시 기술이전 등 산업기여도 살펴
산업부는 정부 주도 개발방식을 통해 해상풍력 보급 확대를 이끌기로 했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해상풍력 특별법 제정으로 계획입지제도의 법적 근거를 마련할 방침이다.

해상풍력 특별법 제정 이전에는 집적화단지 활성화로 공공성을 높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자체와 중앙정부 간 협업을 강화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재설계할 예정이다.

현재 주민수용성 확보 여부를 비롯해 지자체 주도 입지발굴, 사업시행자 공모계획 유무, 사업기간 등을 평가해 최대 0.1의 추가 REC 가중치를 부여하고 있는 내용을 손보겠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로 3년차를 맞은 풍력 고정가격계약 경쟁입찰의 평가지표 가운데 산업·경제효과 항목을 개선해 국내 제조분야 공급망을 강화하기로 했다. 지난해 입찰 결과 국내 산업기여도가 당락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했던 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구체적으로 기술이전을 비롯해 일자리 창출, 산업 전후방 연계효과 등을 평가할 계획이다. 기술이전 계약을 맺지 않고 국내에 생산시설만 두는 단순 현지화 제품의 경우 낮은 배점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고정가격계약 경쟁입찰을 준비하고 있는 사업자의 시장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향후 2년간 입찰 물량과 시기·평가 등을 담은 로드맵을 오는 7월 중 발표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15MW급 해상풍력 전용설치선 건조 지원과 관계부처 배후항만 구축 협의 등을 통해 해상풍력 공급망 강화에 나서기로 했다.

풍력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 주도로 해상풍력 시장을 늘려나갈 경우 지자체 역할과 권한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 지자체 입장에선 탐탁지 않을 것”이라며 “집적화단지 활성화에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협업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고 밝혔다.

또 “모호한 산업·경제효과 평가기준을 구체화한 것은 객관적이고 투명한 입찰시장 운영이란 측면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지난해 경쟁입찰 결과처럼 입찰가격이 당락을 가르는 평가구조가 이어질 경우 국내 기업이 내수시장에서 설 자리는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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