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해상풍력 시장 왜 매력적인가] ①정책·공급망·인프라 삼박자 갖춰
[영국 해상풍력 시장 왜 매력적인가] ①정책·공급망·인프라 삼박자 갖춰
  • 박윤석 기자
  • 승인 2024.09.24 2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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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지발굴부터 시장 활성화까지 정부 주도 체계적 지원
글로벌 협업으로 풍력터빈 브랜드 없이 세계 시장 선도
2022년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 857MW 규모 트리톤 놀 해상풍력단지는 영국 중동부 링컨셔 해안에서 약 32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독일 최대 민간발전사 RWE가 대주주로 참여해 건설·운영을 맡았다.(사진=RWE)
2022년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 857MW 규모 트리톤 놀 해상풍력단지는 영국 중동부 링컨셔 해안에서 약 32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독일 최대 민간발전사 RWE가 대주주로 참여해 건설·운영을 맡았다.(사진=RWE)

[일렉트릭파워 박윤석 기자] 2015년 국제사회가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통해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억제하자는 데 뜻을 모은 지 8년이 지났다. 각국 정부가 도전적인 목표를 수립하고 탄소 저감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상기후 징후는 여전히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국 대부분 지역이 기상관측 이래 역대 최고 9월 기온을 기록한 우리나라는 유례없는 무더운 추석 연휴로 몸살을 앓았다. 이 같은 역대급 폭염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기후위기 대응에 각국 정부가 보다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탄소중립 이행과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한 중장기 에너지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해상풍력은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로 넷제로 달성과 무역장벽을 해소할 핵심 수단으로 꼽히는 대표 녹색에너지다.

하지만 복잡한 인허가를 비롯해 주민수용성 확보, 개발비 부담, 공급망 등이 안정화되기 전까지 기저발전 대비 발전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어 초기 단계에서 사업자가 떠안아야 할 리스크 또한 커 시장 활성화가 쉽지 않은 분야다.

결국 우리나라와 같이 정책적으로 해상풍력 육성을 목표하고 있는 국가의 경우 선도국가들이 체계화한 시스템을 자국 실정에 맞게 도입함으로써 해상풍력 개발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시행착오를 최소화해 시장 확대를 속도감 있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해상풍력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영국은 전 세계 최초로 탄소중립 목표를 법제화할 만큼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 나서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2008년 기후변화법 제정으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시한 이래 2019년 6월 법 개정을 통해 2050년 넷제로 달성을 공식화했다.

영국은 2030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1990년 대비 68%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데 이어 2035년까지 78% 감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줄이려는 수준과 비교해 한층 공격적인 목표다. 이 같은 NDC 달성 현실화 계획을 뒷받침하는 게 해상풍력이다.

영국은 현재 14.7GW 수준인 해상풍력을 2030년 50GW 규모로 3배 이상 늘려 탄소중립 목표에 접근하는 동시에 에너지 안보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구상에는 5GW 규모 부유식해상풍력 개발도 포함돼 있다.

영국은 입지 발굴부터 인허가, 사업자 선정, 계통연계, 배후항만 등 정부 주도 아래 체계적으로 해상풍력 시장을 키워가고 있다. 여기에 더해 공급망 생태계 안정화를 위한 기술개발과 투자유치 지원을 통해 해상풍력산업 기반을 견고히 다져가고 있다.

특히 해상풍력 개발비용 가운데 30% 내외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풍력터빈을 자국 브랜드로 갖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시장을 이끌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영국 풍력발전 현황
영국 풍력발전 현황

해상풍력 14.7GW 규모 가동 중
어느 국가든 해상풍력 시장을 키우기 위해선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개발 환경을 우선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수조원대 투자가 이뤄지는 해상풍력 프로젝트 특성상 경제성 확보와 예측 가능성은 사업자 입장에서 최우선 고려 대상이다.

현재 글로벌 해상풍력 시장은 전통적인 발전사업자를 비롯해 자금력을 앞세운 오일·가스 사업자와 투자운용사들이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해당 개발사들이 영국 해상풍력 시장에 지속적으로 몰리고 있는 이유 또한 일관된 정부 정책 아래 비용효율적인 개발을 가능하게 하는 공급망과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2020년을 전후해 국내 해상풍력 시장에도 글로벌 개발사들이 대거 진출했지만 수시로 변하는 정책·제도로 인한 시장 불확실성과 공급망·인프라 부족에 따른 개발비용 부담으로 사업 철수를 고민하는 개발사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현재 영국의 풍력설비 총 설치량은 30.3GW 규모다. 우리나라 풍력 보급량의 14배가 넘는 수치로 2022년 기준 국내 전체 재생에너지 설비용량과 맞먹는다.

30.3GW 가운데 해상풍력으로 운영 중인 설비는 절반에 가까운 14.7GW다. 43개 프로젝트에 걸쳐 설치된 2,765기의 풍력터빈을 통해 탄소배출 없는 청정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여기에는 부유식해상풍력으로 개발된 하이윈드 스코틀랜드(30MW)와 킨카딘(50MW) 2개 프로젝트가 포함돼 있다.

영국 재생에너지산업과 490여 회원사의 해외진출을 지원하고 있는 협회 조직인 RenewableUK에 따르면 현재 가동 중인 풍력설비 30.3GW를 통해 생산 가능한 발전량은 연간 8만1,860GWh 정도다. 이는 에너지공단이 발표한 2022년 우리나라 총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1.6배가 넘는 수치로 지난해 서울·부산 지역 전체 전기사용량을 충당하고도 남는 규모다.

영국 발전원별 전력공급 비중
영국 발전원별 전력공급 비중

지난해 해상풍력 발전비중 17% 달해
영국의 전원믹스를 보면 그동안 정부가 풍력 확대에 얼마나 공을 들여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전력거래소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National Grid ESO에 따르면 지난 8월 전력공급 비중이 가장 높은 발전원은 풍력으로 31.8%를 차지했다. 이어서 ▲원자력 18.2% ▲LNG 16.8% ▲태양광 8% ▲바이오매스 7.1% 순이다.

풍력 비중은 계절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이지만 20% 초반부터 30% 중반까지 전원믹스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낸다. 지난해 전체 전력공급 비중에서도 풍력은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LNG가 32%로 가장 많은 전력공급을 담당한 가운데 ▲풍력 29.4% ▲원자력 14.2% ▲바이오매스 5% ▲태양광 4.9% 등이 뒤를 이었다.

영국 정부에서 발표한 ‘UK Energy in Brief 2024’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영국의 총 발전설비와 발전량은 각각 105GW와 293TWh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와 비교해 발전설비는 30% 가량 적고 발전량은 절반 수준이다. 전년 대비 영국의 총 발전량이 10% 가량 줄어든 것은 전력수요 감소에 더해 전력수입이 대폭 증가했기 때문이다.

2023년 기준 영국의 에너지원별 발전비중을 살펴보면 ▲재생에너지 46.4% ▲LNG 34.7% ▲원자력 13.9% ▲석탄 1.3% 등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2038년 목표하고 있는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인 32.9%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지난해 영국 총 발전량 293TWh 가운데 해상풍력을 통해 공급한 전력은 49.7TWh 규모로 17%에 달한다. 이는 한전 통계 기준 지난해 국내 전체 신재생에너지 발전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오스테드가 개발한 세계 최대 규모 혼시2 해상풍력단지(1,320MW)는 2022년 8월 종합운전에 들어갔다.(사진=오스테드)
오스테드가 개발한 세계 최대 규모 영국 혼시2 해상풍력단지(1,320MW)는 2022년 8월 종합운전에 들어갔다.(사진=오스테드)

6차 라운드 CfD 가격 직전 대비 45% 이상 올라
영국 정부는 생각에만 머무는 계획 수립에 그치지 않고 행동하는 정책으로 지금의 해상풍력 강국을 실현했다. 정주 주도 개발방식으로 해상풍력 확대 계획을 수립하고 해당 목표에 맞춰 직접 입지발굴에 나서다보니 시장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높아져 자연스럽게 개발사들의 투자가 이어졌다.

여기에 더해 해상풍력 개발을 지연시키는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일원화하는 계획법을 2008년 제정해 시장 확대 가속화에 힘을 실었다. 영국의 해상풍력 확대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는 임대 라운드와 CfD(차액결제거래)는 여러 부침 속에서도 영국 해상풍력 시장을 견인한 대표적인 제도로 꼽힌다.

영국은 정부가 관리하는 해역을 장기간 임대해주는 방식의 리스 라운드를 통해 해상풍력 개발 사업자를 선정하고 있다. 계획한 시장 규모에 따라 정해진 철차와 기준에 맞는 입지를 선정한 후 입찰로 사업자를 정한다. 이때 사업자의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기 위해 적용하는 계약이 CfD다.

영국은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일환으로 2002년부터 용량 기반의 RO(Renewable Obligation)제도를 운영하다 2014년 가격 기반인 CfD로 본격 전환했다. 입찰을 통해 정부 지원금액을 결정하는 CfD는 15년 장기계약으로 사업자의 투자 불확실성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이 같은 시장 경쟁은 비용효율적인 프로젝트 개발을 가능하게 해 LCOE 하락으로 이어졌다.

영국 정부가 최근 진행한 6차 라운드에서 CfD 행사가격을 대폭 인상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선 5차 라운드에서 개발비용 상승 대비 낮은 고정가격에 부담을 느낀 개발사들이 입찰 참여를 포기한 상황을 고려해 시장 환경에 맞춰 탄력적으로 조정한 것이다.

RenewableUK에 따르면 6차 라운드 결과 10개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걸쳐 총 5.3GW 규모가 선정됐다. 여기에는 400MW 규모 부유식해상풍력 1개도 포함돼 있다. 고정식 해상풍력의 경우 MWh당 54~59파운드에 CfD 계약이 체결됐다. 이는 직전 4차 라운드 가격 대비 약 45% 이상 상승한 금액이다. CfD 행사가격이 크게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2015년 이뤄진 첫 번째 입찰 대비 금액은 절반가까이 떨어진 수준이다.

영국 정부의 이 같은 유연한 가격 정책은 해상풍력 개발비용을 낮출 수 있는 공급망, 인프라, 글로벌 협력 채널 등을 차근차근 구축해 온 결과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첫 해상풍력 실적을 거둔지 20여 년의 짧은 기간 동안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시장으로 성장시킨 노력과 혁신을 무시한 채 영국 수준으로 해상풍력 개발비용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제 걸음마를 배운 아이에게 뜀박질을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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